[승소열전] 궁지에 빠진 탈북주민 구제한 공익변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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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4-09-0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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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태어난 북한 주민이 중국에 남아있는 호구부(가족관계등록부에 해당)를 이용해 중국여권을 발급받은 다음 한국에 들어와 새터민 정착지원금을 받았더라도 이를 부정수급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여러 공익변호사들이 연대해 궁지에 빠진 탈북 주민을 구제했다는 점에서 특히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중국 국적을 취득하고도 북한이탈주민이라고 속여 국내 정착지원금 등을 부정 수령한 혐의로 기소된 A(60)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2019도12395).
중국에서 북한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A씨는 1975년 북한으로 건너가 북한공민증을 발급받고 생활하다 2001년 탈북해 중국으로 향했다. 이후 일용직 노동자로 만주 일대를 전전하다 중국 호구부에 자신의 출생 자료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중국 공안청에 호구부 회복 신청을 했다. 이를 근거로 중국 여권을 발급받은 그는 2007년 한국으로 들어온 다음 북한이탈주민으로 등록하고 정착지원금과 직업훈련장려금 등 총 480여만원을 받았다.
중국서 북한인 아버지
중국인 어머니 사이 태어나
A씨는 북한에 남겨진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 2010년 다시 중국을 방문했다가, 수상하게 여긴 공안에 적발돼 한국 여권을 취득하게 된 경위를 추궁당했다. A씨는 북한으로 송환될 것을 우려해 “사실은 중국인인데, 돈을 주고 한국 여권을 샀다”고 진술했다. 한국 여권을 압수당한 A씨는 선양에 있는 한국 총영사관을 찾아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여권을 다시 발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총영사관이 중국 공안에 여권 반환을 요구하자, 공안은 “A씨는 중국 내 호구부가 있는 자로서, 대한민국 여권 취득 경위가 의심스럽다”며 한국 국적 신청 당시 제출한 탈북 증명 자료 등을 제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담당기관인 국가정보원은 중국 정부에 A씨의 탈북 사실을 해명하지 않은 채 A씨를 ‘위장탈북’ 혐의 등으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고, 결국 A씨는 새터민 정착지원금을 부정수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지원 대상이 되는 ‘북한이탈주민’은 탈북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으로 제한된다. 만일 부정한 방법으로 지원금을 받으면 5년 이하의 징역 등 형사처벌을 받는다.
중국에서도 북한에서도
살지 못해 한국으로 탈출
송윤정(37·변호사시험 6회) 변호사 등 변호인단은 재판과정에서 A씨가 북한이탈주민의 요건을 갖췄다는 점을 입증하면서, 중국 공안의 주장은 ‘A씨가 중국인이 아님을 반증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면 제시하라’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법원도 탈북민이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북한국적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내 입국을 위해 제3국 등에서 신분증명서류를 받은 것만으로는 해당 국가의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국내 정착지원금 부정수령혐의
60대 무죄 이끌어
1,2심은 “중국은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 국적을 갖기 위해서는 북한 국적을 포기해야 하는데, 탈북민인 A씨가 그러한 절차를 밟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중국 공안청에 호구부회복을 신청했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중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중국이 요구했던 것은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A씨가 정말 탈북민인지 여부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자료였다”며 “국정원, 외교부, 통일부 등은 A씨가 탈북민임을 입증할 책임과 능력이 있었음에도 오히려 중국 공안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A씨를 고발하고 보호결정까지 취소했다”고 지적한 뒤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이 같은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 사건은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이탈주민지원법률지원위원회가 주도하고 사단법인 통일법정책연구회(회장 박원연)와 공익재단법인 동천(이사장 차한성), 공익사단법인 정(이사장 김재홍·김용균), 법무법인 숭인(대표변호사 양소영)에 소속된 공익 변호사 등이 연대해 변호를 펼쳤다.
박원연(41·변호사시험 3회) 통일법정책연구회장은 “지난해 북한 선원 2명을 정부가 강제로 북송한 이후 탈북자에 대한 국적문제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북한이탈주민법상 북한이탈주민의 요건과 국적 취득의 기준을 대법원에서 확정해 준 것으로 그 의의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는 우리나라 국민이자 북한이탈주민임에도, 대한민국 외교당국이 국적판정을 위한 법률적 검토 없이 보호조치 노력을 중단하고 중국인으로 단정해 약 10년동안 고통을 겪고 살아야만 했다”며 “정부는 재중 탈북자 보호에 눈감지 말고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률신문 왕성민 기자 wangsm@lawtimes.co.kr